haa - na
Home    Info
About: 
[Flash 9 is required to listen to audio.] 0 plays

shugo tokumaru-Lahaha

좋아하는 노래

-

끈끈한 ‘가족애’같은거 원래부터 없다가 본인들 마음약해지고 힘없어지니 명절만 되면 가족이니까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거 좀 이해하기 힘들다. 본인들이 피하고 싶을때엔 연락끊고 잘 살더니, 정작 내가 불편해서 피하고 싶을때엔 ‘인연을 끊을 작정이냐.” 고 한다. 웃기다. 과거의 일은 잊은건지 아님 알고도 뻔뻔한건지 잘 모르겠다.  

정말 명절이 싫다. 

-

무기

사랑을 검으로 삼고,

유머를 방패로 삼으라.

베르나르베르베르

-

누구라도. 만났다 헤어질 수 있다. 여러번의 경험으로 나는 이미 그것을 알지 않았나. 예외는 없다. 

정숙,하나,명호,학진.
우리는 크로노스라는 대학밴드동아리 선후배 사이이자 졸업동기들이다. 나의 기준으로 1999년에 학진오빠와 명호오빠를 처음 봤으니, 어느새 우리가 만난지도 10년이 넘었다. 2008년 봄. 고됐던 나의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그리고 졸업동기끼리 함께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던 것을 뒤늦게라도 지키기 위해 우리 넷은 제주도에 갔다. 이 사진을 보면 우리가 그때 제주도에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사진을 찍고 다음 해 봄에 정숙이와 명호는 결혼을 했고, 그 다음 해 봄이 막 다가올 때 즈음 학진은 말도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정숙과 명호의 결혼은 모두가 예상했었기에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학진의 죽음은 우리에겐 감당하기 많이 힘든 일이었다. 아마도 학진이오빠에게도 그랬겠지. 삶이 이렇게나 허무하다니. 당장 내일 내가 죽어버려도 하나도 아쉽지 않을것 같았다. 가까운 누군가를 갑자기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마 알겠지마는.
 아마도 이곳은 섭지코지 근처일 것이다. 꽃밭을 보고 누가 먼저랄것 없이 우리는 유채꽃밭에 들어가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가 이를 다 드러내고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예쁘고 좋다.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살살 시려지기도 하는 그런 사진이다. 
작곡가여러분께>
올해 초, 학진오빠의 기일에 맞추어 우리는 학오빠가 좋아했던 노래, 우리가 함께 자주 부르던 노래를 연습해서 추모공연을 했습니다. 내년 기일에 맞추어 지금부터 추모공연을 또 준비할 생각인데 그때 오빠에게 들려줄 노래가 있으면 좋을것 같아요. 작곡해주신 곡을 우리가 편곡해서 가사를 붙일수도 있을것 같고.. 더욱 의미있는 공연이 될것 같습니다. 부탁드려요. :)

정숙,하나,명호,학진.

우리는 크로노스라는 대학밴드동아리 선후배 사이이자 졸업동기들이다. 나의 기준으로 1999년에 학진오빠와 명호오빠를 처음 봤으니, 어느새 우리가 만난지도 10년이 넘었다. 2008년 봄. 고됐던 나의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그리고 졸업동기끼리 함께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던 것을 뒤늦게라도 지키기 위해 우리 넷은 제주도에 갔다. 이 사진을 보면 우리가 그때 제주도에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사진을 찍고 다음 해 봄에 정숙이와 명호는 결혼을 했고, 그 다음 해 봄이 막 다가올 때 즈음 학진은 말도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정숙과 명호의 결혼은 모두가 예상했었기에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학진의 죽음은 우리에겐 감당하기 많이 힘든 일이었다. 아마도 학진이오빠에게도 그랬겠지. 삶이 이렇게나 허무하다니. 당장 내일 내가 죽어버려도 하나도 아쉽지 않을것 같았다. 가까운 누군가를 갑자기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마 알겠지마는.

 아마도 이곳은 섭지코지 근처일 것이다. 꽃밭을 보고 누가 먼저랄것 없이 우리는 유채꽃밭에 들어가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가 이를 다 드러내고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예쁘고 좋다.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살살 시려지기도 하는 그런 사진이다. 

작곡가여러분께>

올해 초, 학진오빠의 기일에 맞추어 우리는 학오빠가 좋아했던 노래, 우리가 함께 자주 부르던 노래를 연습해서 추모공연을 했습니다. 내년 기일에 맞추어 지금부터 추모공연을 또 준비할 생각인데 그때 오빠에게 들려줄 노래가 있으면 좋을것 같아요. 작곡해주신 곡을 우리가 편곡해서 가사를 붙일수도 있을것 같고.. 더욱 의미있는 공연이 될것 같습니다. 부탁드려요. :)

-

“인생 뭐 있어?” 이런말 진지하게 하는거 왠지 좀 싫었는데 가만히 생각하면 진짜 인생 뭐 있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죽은 사람들이 보고싶다. 

해피

초등학교 2학년? 3학년쯤인가.. 엄마가 밤색 얼룩무늬의 강아지를 집에 데려왔다. 털이 복실복실한 강아지는 이름이 ‘해피’라고 했고, 그날부터 우리집 좁은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해피는 처음 나와 같이 살았던 동거견이다. 해피는 집에서 남은 밥같은걸 먹고 살았는데, 어렸을때 동생과 내가 너무 만져서(어른들이 말하길 손이 탔다고 했었다) 해피가 컸을때는 많이 사나웠었다. 해피는 가끔 주인도 몰라볼 정도로 사나웠는데, 대문을 열어놓으면 동네사람들이 집앞을 조용히 지나갈수가 없었다. 지나가기만 해도 해피가 달려가서 물었기 때문인데, 할머니랑 엄마가 사람들에게 사과했던게 한두번이 아니다. 할머니는 물린 사람들에게 해피의 털을 라이터로 태워서 거기에 참기름을 섞어 물린 부위에 발라주셨다. 그게 진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해피가 많이 컸을때 우리집엔 담비라는 개도 왔다. 담비는 해피와 달리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심지어 말도 잘 알아들어서 심부름도 곧잘 했다. 할머니와 슈퍼에 가면 담비는 할머니 담배를 입에 물고 집까지 배달을 했다. 

어느날 할머니가 내 친구 수현이 아빠에게 해피를 잡아가서 먹으라고 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날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수현이네 아빠가 정말 험악한 얼굴을 하고 우리집 마당에 들어와서 울부짓는 해피를 보자기에 싸더니 해피 목에 걸려 있는 쇠줄을 보자기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빼서 한순간에 해피의 목을 조였다. 울부짓던 해피는 한순간에 조용해지고, 컸던 몸은 작아졌다. 수현이네 아빠는 해피를 그렇게 작은 공처럼 만들어서 대롱대롱 가져갔다. 

할머니는 해피로 만든 개고기가 다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수현이네 개고기를 드시러 가셨고, 나랑 동생은 안방에 엎드려서 집안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해피가 그렇게 죽고 담비는 며칠간 집을 나갔다가 돌아왔다. 다른 식구들은 해피가 너무 사나워서 종종 다른사람을 주거나 개고기를 해먹어야 한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해피가 좋았다. 가끔은 나도 못알아보고 다리를 물었지만, 그건 나랑 동생이 해피가 어렸을때 너무 많이 만지고 괴롭혀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미움만 받는 해피가 많이 안쓰러웠다. 

-

휴가. 올레 6코스가 좋다고 하는데, 이틀쯤 묶고 싶은 게스트하우스가 6코스 시작점에 위치해서 거꾸로 걸을까 한다. 첫날은 오후에 도착해서 6코스 마지막지점 근처 게스트하우스 아무데서나 자고;;, 다음날 일찍 거꾸로 걸어 달팽이게스트하우스까지 도착.  저녁먹고 자고, 다음날 근처 동네 돌아다니다가 스노쿨링을 하고, 해변에서 쫌 놀고 책읽고 또 산책하다가 다음날 느즈막히 집에 가기. 달팽이하우스는 간단한 조리도 가능하다고 해서 시장에서 먹고싶은 것 사서 해먹어도 괜찮을 듯. 게스트하우스는 숙박비도 저렴하고,  제주도는 복지카드로 항공비 결재가 가능해서 아마도 부산가는 것 보다 경비가 덜 들것 같다. 이왕이면 뽕도 뺄겸 갔다가 오래 있다 오면 좋겠는데 복지카드결재가 가능한지 알아봐야한다. 트래킹화 하나 사고, 먹물이랑 양순이 봐줄 사람만 구하면 될 듯. 친구랑 같이 여행을 갈땐 나는 거의 준비도 안하고 심지어 뭘 하고 싶은지 생각도 안하는 편이어서 현지 가이드 졸졸 따라다니는 느낌인데(같이 가는 친구가 괜찮은 사람이라면 이것도 나쁘지 않음), 이렇듯 혼자 가는 여행을 준비할때는 손수 이것저것 알아볼 수 밖에 없으니 더 기대되는거같다. 아압.. 벌써부터 다 때려치우고 날아가고싶다. 

-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간혹 나랑 웃으며 이야기좀 했다고 나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과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럴땐 티 안내고 적절히 그사람과 나의 거리를 좁히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데 지혜를 발휘하기 전에 먼저 수가 틀려서 티가 난다는게 문제다.

아. 나하나야. 

-

나는 어렸을때도 사람에 대한 경계가 많고 쌀쌀맞아서 참을성없는 어떤 사람들에게 쌀쌀맞고 재수없다는 이야기도 좀 들었다. 그런데 한번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 간이며 쓸개며 다 빼줄 기세로 성심성의껏 정성을 다했다. 지금은 경계가 허물어져 좋아하거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다. 이건 의도한것도 아니고 그냥 어느때부터인가 본능처럼 그렇게 된것이다. 아마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몇명의 대상과 건강한  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경험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내의지와 상관없이 잘 안되는 일이므로 가끔 속상해도 어쩔 수 없다. 억지로 이것을 이겨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살다보면 지혜가 생길거라는 기대가 조금 있을 뿐이다.


"The Elephant In The Room" theme by Becca Rucker. Powered by Tumblr. Install theme.